정부가 2012년부터 500억원 이상 공공발주 사업 시 BIM 제출을 의무화한 데 이어, 2016년부터는 조달청이 발주하는 모든 공공발주 사업에 BIM 적용을 의무화하는 계획을 발표했음에도 시장은 여전히 BIM에 대한 준비가 더디다. BIM에 대한 초기의 기대치와는 달리 BIM의 적용성과 효과를 의심하는 목소리까지 현장에서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연구원이 국내 422개 건축사사무소를 대상으로 국내 최초 건축사사무소의 BIM 수행능력과 준비상황에 대한 현황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BIM이 시장에 도입된 지 10여년이 지났음에도 건축사사무소 75%가 BIM을 직·간접적으로도 운용한 경험이 없다고 답했다. 조사에 응답한 업체들도 BIM의 효율성은 인정하지만, 현실적으로 BIM 대가기준도 없고, 시장상황이 무르익지 않다 보니 실제 운용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드러났다.
BIM의 효율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 75.4%는 BIM 활용 설계 시 설계 생산성이 향상된다고 응답했다. 또한 앞으로 BIM이 설계도구로써 캐드(CAD)를 대체할 것으로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응답자 34.1%가 ‘점진적으로 대체할 것’이라고 답했고, 이어 응답자 절반 이상(54.7%)은 ‘CAD와 혼용’될 것으로 예상했다. 대체 불가능할 것이라는 응답은 11.3%에 불과했다. BIM의 시장도입은 늦든 이르든 언젠가는 현실화돼 시장을 지배할 것이라는 인식이었다.
그럼에도 BIM에 대한 건축사사무소 개별 차원의 준비는 상당히 부족한 상태였다.
이번 조사에서 BIM을 자체적으로 운용한 경험이 있는 건축사사무소는 58개사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5개 업체는 전문업체에 위탁, 운용한 경험만 있었고, 그 외 359개사(75%)는 BIM 운용 경험이 아예 없었다.
건축연구원이 자체 운용 경험이 있는 건축사사무소를 대상으로 BIM 운용기간을 묻자, 3년 이내가 75.8%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1년 이내라고 답한 건축사사무소가 29.3%로 가장 많았고 이어 2년이 24.1%, 3년이 22.4%, 4년이 5.2%, 5년 이상이 19.0%였다.
경험과 운용 기간이 부족하다보니, BIM 전문인력을 보유한 업체도 거의 없었다.
자체 운용 경험이 있는 건축사사무소를 대상으로 BIM 운용 전문인력 규모를 묻자, 응답자 72.4%가 ‘1명만 보유 중’이라고 답했다. 2명을 보유한 업체는 15.5%, 3명 보유는 5.2%에 불과했다.
흥미로운 점은 설계 작업과정에서의 BIM 업무 비중이다.
건축사사무소 40.0%는 설계 작업 과정에서 BIM 업무 비중이 20% 미만이라고 답했다. 그 외 20~40% 미만이 22.0%, 40~60% 미만이 16.0%를 차지했다. 80% 이상은 20.0%에 불과했다.
건축연구원 관계자는 “BIM의 특징과 가장 큰 장점이 설계 초기단계부터 시공까지 전 과정을 한 가지 모델로 건축물 관련 정보를 통일해 입력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설계 단계에서부터 업무의 20% 미만밖에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은 BIM이 사실상 요식행위로 끝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는 건축사사무소들이 BIM을 운용해 설계하는 시점에 대한 조사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건축연구원이 건축사사무소들에 BIM을 운용해 설계하는 시점이 언제냐고 묻자(복수응답), 응답자 50.0%와 53.4%가 각각 ‘기획설계’와 ‘계획설계’ 단계라고 꼽았다. 중간과 실시설계에 적용하는 건축사사무소는 22.4%와 24.1%에 불과했다.
만약 BIM 도입 취지에 맞춰 BIM이 제대로 운용되고 있다면 BIM은 중간설계와 실시설계 과정에서 사용하는 건축사사무소가 압도적으로 많아야 한다.
기획설계와 계획설계는 콘셉트 디자인이고, 중간설계 이후 단계부터가 시공상세도로 넘어가기 위한 다양한 건축물 관련 정보가 입력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설계사들이 BIM을 운용하는 수준은 3D로 그림을 그리는 수준”이라며 “이 정도 수준으로는 시공단계에서 아예 사용할 수 없어 폐기처분해야 한다. 실제로 BIM 발주사업건수 대부분이 시공단계에서 BIM 작업을 다시 한다”고 꼬집었다.
BIM은 입체적인 모델과 도면, 그리고 디지털 정보가 하나로 통합된 형태다. 이 같은 BIM의 특성을 잘 살리려면 하나의 작업 주체에서 정보가 생성돼 설계 단계 모델에서 추출된 정보를 기반으로 도면이 작성되고 시공까지 매끄럽게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 상태로 BIM 시장이 진행된다면 설계 BIM과 시공 BIM이 각자 따로 노는 상황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한 건축물을 대상으로 BIM 버전이 설계용과 시공용으로 두 개가 존재하는 셈이 된다.
이 때문에 BIM 업계 관계자들은 “전 세계에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나라 BIM 시장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 상태로는 설계사도 시공사도 모두 힘들 뿐”이라고 토로했다.
◆ 설계 단계부터 BIM 정착시키려면...
건축사사무소들은 설계시장에서부터 BIM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할까.
BIM 중장기 발전전략 수립을 위해 우선돼야 할 정책과제를 묻는 질문(복수응답)에서 대부분의 응답자는 ‘BIM 설계 대가기준 마련(70.1%)’을 꼽았다. 이어 ‘중소건축사사무소에 대한 BIM 도입비용 지원’이 64%, ‘BIM 전문인력육성 및 지원’이 50%, ‘BIM 교육 프로그램 개발’이 49%, ‘BIM 설계도서 작성지침 마련’이 45%를 차지했다.
건축연구원 측은 “싱가포르는 2015년까지 건설산업 80%에 BIM 적용을 목표로 중장기 로드맵을 설정하며 기업의 BIM 도입 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2억5000만달러의 기금을 조성했고, 그 외에도 기업이 BIM 프로젝트에 참여해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6회까지 BIM 펀드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며 “반면 우리 정부는 2016년까지라는 계획만 세우고 실제로 구체적인 지원방안 마련과 제도 정비에는 소홀한 점이 대단히 아쉽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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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희기자 jh606@